한국에 피자가 알려지게 된 계기
한국땅에 피자가 본격적으로 전해진 계기는 많이들 아시겠지만 한국전쟁이라 많이들 말합니다.
(사실 그전부터 한국에 살던 외국인 선교사 등 극소수 외국인들은 먹었단 의견도 있습니다)
전쟁 전후해서 한국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즐겨먹었으며 그들과 함께 일하거나 그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던 한국인들에게까지 (먹어보나 맛있고 신세계여서) 퍼지고 퍼져 유래됐다고 전해집니다.
또 피자의 본고장이라는 이탈리아에서도 한국전 당시 의료지원을 했습니다.
당시 서울 영등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탈리아 제68 적십자병원의 경우 1951년부터 55년까지 무려 23만을 진료합니다.
그 와중에 전쟁으로 인해 다치거나 병들고 굶주린 한국인 환자나 그 가족들 어린아이들에게 피자를 대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번 맛본 피자맛을 못잊어(?) 병원 앞에 서성거리던 어린아이들이 즐비했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였습니다.
전쟁중이나 전쟁 직후 절대빈곤의 시대다보니길거리엔 굶주린 어린아이들로 넘쳐났고 그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혹은 맛있어서(?) 미군 등 외국군만 보면 먹을 걸 얻기위해 따라다녔고 그들이 제공하는 서양음식에 눈뜨기 시작합니다.
가령 피자와 함께 대표적인 패스트푸드인 햄버거 또한 본격적으로 한국에 전해진건 한국전 전후해서 미군들에 의해서 입니다.
미군들이 즐겨먹던걸 (피자와 마찬가지로) 같이 일하는 혹은 미군들을 상대로 장사하던 한국인들이 맛보고 너무 맛있다며 입소문난게 퍼지고 퍼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죠.
그건 앞서 일본도 마찬가지였는데 다들 알다시피 1945년 패망한 일본은 7년간 GHQ 통치에 들어가는데 이때 미군이 후에 한국에서 행한것처럼 전쟁통에 부모를 잃거나 굶주림에 허덕이는 일본 어린이들에게 음식 등을 나눠줬습니다.
미국의 원조하에 급식을 시행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식 식단이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이건 후에 한국도 똑같은 코스를 밟게 되구요.
그래서 흔히 1945년이후 1950년대에 한국과 일본의 식생활이 점차 서구화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게 바로 이러한 미국의 영향입니다.
아무래도 양국 모두 미국의 영향력하에 막대한 원조를 받으며 성장하다보니 문화적 영향을 크게 받게되고 자연스레 식생활도 따라간 것이죠.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최초로 피자를 만들어 판매한 곳은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워커힐호텔 힐탑 바 (후에 피자힐로 변경)로 한국 건축 1세대로 한국 현대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김수근 선생이 설계했습니다.
워커힐 호텔은 엄청난 미군의 희생을 감수하고 낙동강 전선을 사수해 대한민국을 지킨 한국전쟁의 영웅 월튼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따 1963년 개관한 호텔로 당시 국제 관광공사 (지금의 한국관광공사)가 외국 국빈들을 영접하고 한국 관광산업 진흥을 도모하고자 지어진 곳입니다.
호텔개관과 함께 런칭한 힐탑 바 (피자힐)는 역 피라미드 건축양식으로 크게 화제를 모은 걸로 알려지며 피자 전문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서 그 명성을 떨치게 되는데 어디까지나 외국 국빈들이나 주한 외국인이나 한국인 VIP 고객들만 드나들며 이용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즉 대중적인 피자가게는 아니란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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